새벽 4시에 버스를 타기 위해 한 두 시간 전에는 움직여야 되니 거의 밤을 꼬박 새다시피 했다. 빗방울이 또 떨어지기 시작하니 걱정이다. 울릉도, 독도탐방이라는 가슴 설레는 여행에 화창한 날씨를 기대해 보지만 예년에 없이 길고 지루하게 내리는 비가 야속하기만 하다. 우리가 떠나기 하루 전날에도 하늘이 뚫린 듯 퍼붓는 비는 불안을 가중시킨다.
울릉도 독도 여행은 언제나 여러 가지 변수를 염두에 두고 모든 걸 하늘에 맡길 수 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는 묵호항까지 가서 울릉도행 배를 타지도 못할 수가 있다. 설마 그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겠지 하며 불안한 마음을 위로한다.
간밤 잠을 거의 못 잔 탓에 버스 안은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무사히 묵호에 내려 준비해 놓은 한식 뷔페로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배를 타기 위해 묵호항으로 갔다.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비가 불확실을 예고하지만 일단 배는 뜬다고 하니 안심이다. 출렁이는 파도를 타고 오니 어느 새 저 멀리 울릉도가 보인다.
그러나 안내방송은 또 다시 우리들을 불안하게 한다. 날씨 관계로 파도가 높아서 울릉도 접안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한다. 어쩌면 도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늘이 도왔는지 울릉도 땅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보다 조금 늦게 들어오던 포항에서 출발한 배는 결국 높은 파도 때문에 배를 돌려 다시 포항으로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우리는 울릉도에 도착했다는 뿌듯함에 기분이 좋아졌다.
드디어 독도가 보인다. 울릉도에서 배로 거의 두 시간을 달렸나 보다. 막연히 꿈꾸던 독도를 볼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는 그런대로 좋아서 혹시라도 독도 입도에 성공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파도가 세면 접안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결국 독도 입도는 실패했지만 섬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최대한 가까이서 독도를 관람했다.
배에 탄 여행자들을 환영하는 듯 수 백 마리의 갈매기가 우리를 향해 춤추며 날아들었고 섬 중간에 펄럭이는 태극기는 우리들의 가슴을 뭉클해지게 했다. 바로 눈앞에 두고 그 땅을 밟아보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은 컸지만 배 안에서나마 독도를 볼 수 있다는 게 뿌듯하다. 누가 봐도 우리 땅 독도이며 우리가 책임져야 할 땅인 것을 왜 저들은 엄연한 사실을 외면하고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일까?
하늘이 열려야 갈 수 있는 곳, 독도. 3대가 덕을 쌓아야만 입도할 수 있다는 그 곳. 주변까지는 갔으니까 3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2대쯤은 덕을 쌓은 게 아닐까? 나중에 다시 한번 오라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 같아 아쉬움을 뒤로 했다.
왕복 다섯 시간 가까이를 배에서 보내고 약간의 멀미를 느끼며 다시 울릉도로 돌아왔다. 가파른 계단을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 내수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저동항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봉래폭포로 향하는 길의 굽이굽이 아름다운 풍경에 덥고 끈적이는 날씨도 무색하다.
마지막 날 아침, 행남해안산책로. 울릉도 여행은 아마 이 길을 걷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섬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만들어 놓은 이 길, 금방이라도 파도가 덮칠 것만 같은 길, 끝도 없이 걷고 싶은 그 길을 걸으면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환상이다. 크고 작은 바위들과 깊이와 하늘빛에 따라 에머랄드빛, 녹색등 여러 가지의 아름다운 빛을 연출하는 바다. 너무도 투명한 바다 속은 물고기들이 이리저리 헤엄치고 있을 것만 같다. 풍덩 뛰어들고 싶은 충동도 느낀다.
직각으로 뱅글뱅글 돌아 계단을 내려 올 때는 아찔한 마음에 오금이 저리기도 했다. 옛날 한 효녀가 아버지를 기다리다 아버지가 탄 돛단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파도를 헤치고 다가가다 지쳐 그 자리에 우뚝 섰다는 전설이 있는 촛대바위를 끝으로 저동항에 다다르며 울릉도, 독도 여행을 거의 마무리했다.
여행의 시작은 설렘이고 마지막은 추억이다. 떠날 때의 설렘과는 달리 여행에서 돌아올 때의 마음은 언제나 편안하고 차분하다. 가슴에 뿌듯한 추억 하나를 또 보탠다. 집으로 향하는 이 차분함만큼이나 우리를 실은 배는 파도 없이 잔잔한 바다 위를 달리고 있다.
3자동화로봇A 방준기
